2023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간 회고를 글로 처음 남겨본 작년에는 링크드인에 작성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이곳에 기록하고자 한다.
2022년 회고에서는 개인적인 공부와 독서를 충분히 할 수 있었던 ‘Input’의 해로 정의를 했고, 2023년은 ‘Output’의 해가 되기를 기원했다. 감사하게도 원하던 IT 업계와 전략 직무에서 일하며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나름대로 깨달은 바를 정리하여 기록하고 공유 해본다.
2023년 회고와 배움
1. 겸손해야 배울 수 있다.
처음에는 배우기보다는 역량을 발휘하고 보여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름대로 창업도 해봤고,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는 경험을 해오며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주변 분들이 해주는 조언이나 도움을 종종 흘려 넘기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스스로가 성장하기 보다는 소진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동안 길러온 역량을 활용하여 나름 기여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역량을 발견하고 키우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장점을 발견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에게도 배운다’라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직장 생활 N년차인 분들로부터 더 열심히 배울 생각을 못한 게 반성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전/지금 동료들의 장점이 훨씬 잘 보였고, 먼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업하고 하나씩 연습해보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에너지 레벨이 조금 낮았지만 상황 판단이 빨라 타이밍을 잘 잡았고, 어떤 분은 사람들과 노는 것 같았지만 일이 진행되는 데 핵심적인 인물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 빨리 겸손했다면 더 많이 배웠을 것이다. 2024년에는 일은 일대로 잘하고 성과도 내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겸손한 자세로 많은 것을 얻어가면 좋겠다.
2. 수시로 바뀌는 상황은 새로운 기준이 된다.
기준을 상황이 아닌 ‘업무를 하는 나’를 중심으로 세웠을 때는 상사의 지시, 팀원의 피드백, 타사 담당자의 요구가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스스로의 고정된 기준으로 판단하다보니 이해보다는 수용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만의 생각과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기준이 되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하나의 상황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결국 개인이 아닌 ‘상황’을 기준으로 삼을 필요를 느꼈다. 그래야 개인의 기준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는 살아있는 생명처럼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상황도 수시로 바뀌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물론, 상황 봐가면서 일하는 게 지극히 정치적이거나, 간보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고, 때로는 개인의 명확한 주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발휘하는 유연함이 일이 진행되는 데 도움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답을 찾기보다는 현명한 선택을 하자.
3. 리더십은 ‘닭과 달걀의 문제’를 동반한다.
작년에 만났던 다른 조직의 리더와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 필요하다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왔던대로 적극적으로 협업에 임했다. 나중에 알아챘지만, 그 리더는 자신의 정답 외 의견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분이었다. 내가 했던 챌린지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공격하는 것으로 받았는지 마지막에 ‘자신을 왜 리더로 대해주지 않느냐’는 원망섞인 피드백을 듣기도 했다.
이 리더와의 일을 겪고 든 생각은 ‘리더는 누가 만드는가?’ 였다. 다시 말해, 멋진 리더를 부하 직원이 따르는 것인지, 일단 부하라면 리더를 따르고 봐야 하는지의 문제였다. 마치,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콜드 부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자와 수요자 중 누구를 먼저 공략해야하는지의 고민과 비슷했다.
나름의 정답을 찾고 싶어서 읽었던 책 <빌 캠벨,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코치>에서는 리더의 중요성을 더 강조한다.
“당신이 위대한 관리자라면, 부하 직원들이 당신을 리더로 만들 것입니다. 그들이 당신을 리더로 만드는 것이지, 당신 스스로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마인드를 가진 리더를 찾기 어려울 뿐더러, 이런 피드백을 했다가는 갈등만 생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부하 직원이라면 모시는 리더를 먼저 믿고 따라주면 그가 좋은 리더가 될 시간을 줄 수 있고, 자신이 리더라면 성숙한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팀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아직 나는 팀원의 입장인만큼 만나는 리더들을 이해하고 믿어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4. 의미있는 Output 과정은 새로운 Input이 된다.
작년은 인풋을 하고, 올해에는 아웃풋을 해보며 느낀 게 있다. 공부할 때는 빨리 실행해보고 싶고, 막상 실행할 때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이 변덕이라기보다는 몰입하며 일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반복의 일부임을 알았다.
의미 있는 아웃풋이란 단순히 피상적인 결과물보다는 그 과정에서 얻은 깊이 있는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그 배움이 새로운 인풋이 되고, 이는 그 다음 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한번은 기업의 연간 성과 보고 장표를 작성하면서 단순히 도형의 투명도를 몇 퍼센트로 할지 결정 못하는 자신을 보며, 이게 원하던 모습인지 고민이 들었다. 보기 좋은 장표를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장표의 목적에 맞게 그 흐름과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인데, 이를 놓치고 무의미한 아웃풋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장표의 형식적인 완성도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핵심 메시지와 가치를 잘 전달하는 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려 노력했던 과정이 그 다음 보고 자료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됐다.
결론적으로, 인풋과 아웃풋 사이의 상호작용은 단순히 결과물을 산출하는 일회성의 관계를 넘어, 플라이휠처럼 유기적으로 반복되는 순환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을 쳐내듯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장과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처럼 의미 있는 아웃풋이 새로운 인풋이 되는 성장의 과정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라고 있다.
5. 여러 층의 인간관계가 있다.
학생일 때까지만 하더라도, 인간관계는 - 꼭 동갑이 아니더라도 - 친구인 사람 또는 친구가 아닌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그 층이 훨씬 다양하다고 느꼈다. 만났을 때는 너무 좋아서 친구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는 않은 사람도 있고, 지인인듯 아닌듯 헷갈리지만 서로에게 중요할 때 도움이 되는 관계도 있었다.
관계와 역할에 따라 다양한 인간관계를 주식 포트폴리오에 비유해서 생각하곤 했는데, 완전하진 않지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량주형 인간관계: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쌓아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변동성이 낮고 어려운 시기에도 믿고 지지해 줌.
성장주형 인간관계: 새롭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잠재력을 지닌 사람. 새로운 에너지를 주거나 배움을 나눠 줌.
ETF형 인간관계: 강한 연결(Strong tie)보다는 약한 연결(Weak Tie)로 이어진 사람. 친밀감이 높지는 않지만 성장의 계기가 되거나 기회를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
채권형 인간관계: 특별하지는 않더라도 조용히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 가끔 연락하고, 필요할 때 응원하는 사이.
지난 기간 유독 느낀 것은 Weak Tie로 이뤄진 관계에서 오는 우연한 기회와 일들이 많다는 것과 멀었던 인간관계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그 반대도 일어난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나와 어떤 관계일지 고민했다면, 새해에는 그 사람들 입장에서 내가 어떤 역할이 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볼 예정이다.
마무리
지난 2023년은 환경이 여러 차례 바뀌며 일의 종류부터 사람, 분위기까지 다양하게 겪으며 얻은 배움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여럿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그 덕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쉬움이라면, 이 뉴스레터를 시작한 2023년 상반기와 달리 하반기에는 많은 신경을 못 쓴 게 마음에 걸린다. 약간의 부담이 된 나머지 생각한 잠시 잊고 지낸 것도 사실이다. 올해에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뉴스레터를 다시 시작하며,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종종 개인 소회를 담은 글도 남겨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2023년도 고생 많으셨고, 2024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우량주형 인간관계입니다 존버하세요 🤭
새해 복 많이 받아 성민! 새해를 너의 회고 아티클을 읽으며 시작할 수 있어서 참 기쁘다 :)